半岛国的“船戏”,是倒序看的,各有各的精彩。
在半岛国的“船戏”里头,李老爷绝对是绕不过的巅峰。
《露梁海战》和《鸣梁海战》都建议一并打包看完,年轻时的李老爷还需要借助龟背船,到了年纪大了,完全是无招胜有招了。
而每次李老爷面对的对手也相当在线,完全不是啥无厘头的“潘长江版”。
在李老爷的故事里头,有一个人始终绕不过去,就是个“某奸”。
这个人物的设定,很有意思,一开始的时候,一不小心,就把本国的狼子野心暴露得一览无遗。
这个梦想,岛国是做了太久了。
一开始还不太明白为什么要设定这么一个人物,后来发现,大概是“以德服人”的绝佳个例。
这个人,一直跟在李老爷身边,直至战死,也耻于自己曾经的国籍。
传说中的龟背船,设计灵感来自于此。
在文明系列中,如果让半岛发展出这玩意儿,基本海战可以横着走。
当时的局势,其实岛国基本觉得可以“瓮中捉鳖”了。
所以,在还没拿捏时,已经有了自己的小心思。
不仅内部派系斗得厉害,甚至还有了更大的“梦想”。
在这里,大明,得好好感谢一下半岛啊,“如果”不是半岛的李老爷,大明也被岛国这么一划拉的节奏。
这牛皮吹得有点大。
但,咱海战一直不行,也是个无法回避的事实,那个郑和,尽做散财童子了。
其实,此次岛国的战略,还是相当精准的。
水陆两路联合夹击,一举击溃李老爷,从此海陆两路可以横着走。
但是,他们万万没想到,李老爷竟然如此强悍,强悍到大BOSS直接跳脚。
这场精彩绝伦的海战,李老爷依仗的是鹤翼。
这个阵法,岛国不是不知道,甚至还知道破解的招数。
反观李老爷阵营,好多意志不坚定的官僚拖后腿。
按照这个节奏,李老爷的阵法还没展开,就得完犊子。
幸好,三艘龟背神兵天降。
这一番左冲右突,杀得岛国是人仰马翻啊。
而且,这次,龟背吸取了上次的教训,这个头啊,真的是借鉴了“鳖”,会缩的。
李老爷布阵完毕。
一次齐射,岛国的舰队团灭。
这场面,实在是太壮观了,也实在大快人心。
在这点上,咱绝对是和半岛站在一起的。
最后,半岛卖了大明这么大的一个人情,大明总得有点表示啊。
后来的海战里头,大明也派出了一个舰队。
李老爷发现,这派,还不如不派呢,直接来裹乱的不是。
6分。
金汉珉编剧导演、朴海日主演作品。
可圈可点。
毕竟我大明王朝,郑和也下过西洋,但华语导演无一人可以拍出一场像模像样的海战。
倭国将领胁坂安治率舰队进入朝鲜,目标直指大明王朝的天津城,朝鲜皇帝吓得仓皇逃窜。
李水师李舜臣坚壁清野,誓死和胁坂一战。
双方终极之战不约而同选择在见梁海峡。
胁坂安治的策略是诱敌深入,围而歼之;李水使的策略是引蛇出洞,布好战阵,一网打尽。
胁坂安治的舰队数量惊人,战斗力爆表,而李水使有令海上不寒而栗的龟甲舰。
最终李水使凭借着惊人的冷静,耐心的等待,将胁坂安治的舰队引入阵中,尽数歼灭。
场面十分火爆,值回票价。
弱在细节的表现,比如海浪、天气、风速与人物的服饰甚至胡须的关系,比如船体破裂爆炸的细节等等都经不起推敲。
而大场景震撼之余,片中的文戏明显偏弱,战争不仅考验将领的谋略与勇敢,更要反思战争的残酷与失去的人性。
这恰好是许多战争片所缺失的。
认识这位韩国将军也许是从《鸣梁海战》开始,此电影里的李舜臣令我开了眼界。
他是厉害还是真的和电影里所描述的那么“神”我就不得而知,但我知道的是这电影拍出来的气势是有的,剧情是紧凑的,人物描写有张力,有形象。
可能是前剧拍得好看(也可能是我教少看韩国古代战争片),相对来说让我觉得《闲山》缺少了点乐趣。
也许是《闲》并没有把整个中心放在对战中,更多的是是对历史和人物的刻画。
对战场景是有的,但没前剧精彩。
聚焦方向不一样,我个人比较喜欢崔岷植这位演员。
如果大家都没看过这两部,我建议还是先看这个吧,先从大局和历史人物进行认识,再到主要人物的刻画,应该比较合理。
如果六颗星满分的话,我个人认为值两颗半
闲山岛大捷又称闲山岛海战,是1592年8月14日朝鲜与日军在闲山岛附近的一场重要海战。
朝鲜将领李舜臣的水军在此次海战中击沉63艘日船。
为了与朝鲜水师进行决战,日本水师在巨济岛一带集结,准备兵分三路向朝鲜水师发动进攻。
而李舜臣则将其全罗道的舰队和庆尚道的部分舰队组成联合舰队,准备迎战。
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8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李舜臣选择在此地决战是因为这里有著较为宽阔的深水环境,易于设置埋伏,可以向日本舰队进行包围歼灭。
1592年8月13日有平民回报说看到倭舰在巨济岛附近集结。
得到消息后的第二日清晨,李舜臣派出6艘板屋船去引诱日舰。
胁坂安治的海军见到板屋船后,马上追踪上来,一直追到闲山岛附近的广阔海域,与李舜臣的海军相遇。
在李舜臣与日军的前两次交锋中,李舜臣采用的是线型或圆型的连续式的进攻阵型。
虽然这种战术对于击溃敌方舰队很有效,但是也会让很大一部份的敌舰得以逃脱,这样无法有效消灭敌方军力。
为了克服这个缺点,李舜臣在此次海战中摆出了新型的鹤翼阵或称U型阵,意在不但要击溃日本舰队还要将之包围进而歼灭。
日军的战术是先派出快速的军舰突击然后迅速派出主力战舰靠近并登船。
日军的这种战术正中李舜臣的圈套。
朝鲜海军以鹤翼阵将接近的日舰包围住,舰上炮火从各个角度将被围的日舰摧毁。
战斗从早上一直打到傍晚。
在丧失了59艘战舰后,胁坂安治开始撤退,朝鲜水军获得大捷。
李舜臣事后在“见乃梁破倭状”中宣称击毁的日本舰队为大船36只、中船24只、小船13只、击破数63只,但是根据胁坂安治领地的石高算出的动员定数大约为1500人,这个战果数应当是过高了(次年5月日军攻击晋州城时胁坂军统计为900人,而且之前有相当一部分日军士兵回国休整,因此此战日军伤亡应较低)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
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
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日本国和韩国很大,都是宇宙国!
日本国和韩国很大,都是宇宙国!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有前作的铺垫和大韩五千年第一武将李舜臣加持,本人稀里糊涂看完《闲山》全片,未观影前已经做好了本片系自嗨+吹牛逼13为主基调的心理准备,没想到看完不禁感叹:真是小刀拉屁股,开了眼了!
男主全程中风式表演可谓可圈可点,看来他只适合演朝鲜王一类角色。
而海战剧拍成谍战剧,还一不小心混入个变节倭人,前两分钟还面对严刑拷打放声大笑,后两分钟就变节投敌,看的我又是一脸懵逼,可谓纯纯的日本蒲志高本高。
拜托审审剧本啦!
起码要符合基本的逻辑吧?
要吐槽的点有很多,不过要说该剧也不是一无是处,第一反派老卞整的不错,眼部肌肉抽搐的堪比赵四的嘴,能看出来演的非常用力,重新让我对老卞的演技刮目相看。
再就是南朝鲜的服化道还是尊重史实的,尤其是这几个大名的盔甲是真的帅,有一种看《魔神坛斗士》的既视感!
不过最后吐槽一句,全片也就是服化道尊重了史实,其他的就一言难尽了…
闲山岛大捷又称闲山岛海战,是1592年8月14日朝鲜与日军在闲山岛附近的一场重要海战。
朝鲜将领李舜臣的水军在此次海战中击沉63艘日船。
为了与朝鲜水师进行决战,日本水师在巨济岛一带集结,准备兵分三路向朝鲜水师发动进攻。
而李舜臣则将其全罗道的舰队和庆尚道的部分舰队组成联合舰队,准备迎战。
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8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李舜臣选择在此地决战是因为这里有著较为宽阔的深水环境,易于设置埋伏,可以向日本舰队进行包围歼灭。
1592年8月13日有平民回报说看到倭舰在巨济岛附近集结。
得到消息后的第二日清晨,李舜臣派出6艘板屋船去引诱日舰。
胁坂安治的海军见到板屋船后,马上追踪上来,一直追到闲山岛附近的广阔海域,与李舜臣的海军相遇。
在李舜臣与日军的前两次交锋中,李舜臣采用的是线型或圆型的连续式的进攻阵型。
虽然这种战术对于击溃敌方舰队很有效,但是也会让很大一部份的敌舰得以逃脱,这样无法有效消灭敌方军力。
为了克服这个缺点,李舜臣在此次海战中摆出了新型的鹤翼阵或称U型阵,意在不但要击溃日本舰队还要将之包围进而歼灭。
日军的战术是先派出快速的军舰突击然后迅速派出主力战舰靠近并登船。
日军的这种战术正中李舜臣的圈套。
朝鲜海军以鹤翼阵将接近的日舰包围住,舰上炮火从各个角度将被围的日舰摧毁。
战斗从早上一直打到傍晚。
在丧失了59艘战舰后,胁坂安治开始撤退,朝鲜水军获得大捷。
李舜臣事后在“见乃梁破倭状”中宣称击毁的日本舰队为大船36只、中船24只、小船13只、击破数63只,但是根据胁坂安治领地的石高算出的动员定数大约为1500人,这个战果数应当是过高了(次年5月日军攻击晋州城时胁坂军统计为900人,而且之前有相当一部分日军士兵回国休整,因此此战日军伤亡应较低)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
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
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6月21日 第四纪事비변사가 아뢰기를,"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 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수종(首從)이 있고 공에는 대소가 있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 차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적을 벤 것으로써 대략을 논하면, 힘을 다하여 혈전했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시 1등에 참여된 이는 마땅히 별도로 포상을 하여야 할 듯합니다. 첨사(僉使) 김승룡(金勝龍),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은 특별히 당상(堂上)에 올리고, 현감(縣監) 김준계(金遵階)는 3품으로 승서(陞敍)하고, 주부(主簿) 원전(元㙉)은 5품으로 승서하고, 우치적(禹致績) 등 4인은 6품으로 승서하고,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은 공에 맞는 관직을 제수하소서. 만호(萬戶) 한백록(韓百祿)은 전후 공이 가장 많은데 탄환을 맞은 뒤에도 나아가 싸우다가 싸움이 끝나고 오래지 아니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극히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니, 또한 당상(堂上)으로 추증하소서. 배지인(陪持人) 박치공(朴致恭)은 3급(級)을 베고 왜적 한 명을 사로잡았으니 6품으로 승서함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답하기를,"이에 의하여 조처해야 한다. 원균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지 않는가?"하였는데, 회계(回啓)하기를,"원균은 이미 높은 가자를 받았고 지금 이 전첩(戰捷)의 공은 이순신이 으뜸이므로 원균에게는 가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8월 24일 2번째 기사備邊司啓曰: "慶尙道 元均獻捷啓本, 卽頃日李舜臣 閑山等島一時事也。
臨戰首從, 功之大小, 必有差等於其間。
而在此的知爲難。
以斬敵論大槪, 戮力血戰則無疑。
再參一等, 似當別爲褒賞。
僉使金勝龍、縣令奇孝謹特陞堂上, 縣監金遵階三品陞敍, 主簿元㙉五品陞敍, 禹致績等四人六品陞敍, 李孝可等十三人相當職除授。
萬戶韓百祿前後之功最多, 而至於中九之後進戰, 戰罷不久, 竟至於死。
極爲慘惻, 亦堂上追賜。
陪持人朴致恭斬三級、生擒一倭, 六品陞敍何如?" 答曰: "當依此爲之矣。
元均則不爲加資乎?" 回啓曰: "元均已受重加, 且今玆戰捷之功, 李舜臣爲主, 元均似不必加資矣。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8月21日 第二纪事其他影评的都讲错了,或者是精神有问题的碍国喷、🐶篮子之胡说十道。
我这才对当时历史的真实记录。
站在闲山岛的戍楼上放眼望去,一片广阔的海域直达天际,大朵大朵的白云铺满了天空,阳光穿过云隙,在湛蓝的海水上投下万道金光。
是日天朗气清,风轻浪细,最适合渔民出海捕鱼。
但极目之处片帆不见,岸边更是空无一人,一切都异常地静谧。
突然,许多黑点自远处迅速扑来,仿佛从天而降。
黑点越来越大,过不了一会,便能隐约看出是倭国战船的轮廓。
只是这倭国战船数量竟达数百艘,劈波斩浪,气势汹汹。
就在此时,近水海域也驶出了数十艘朝鲜战舰,严以待阵,战舰上的旗帜清晰地印着一个李字。
虽然敌众我寡,但这支舰队并没有避其锋芒,而是在原地一字铺开,等着敌船靠近。
这正是埋伏在闲山岛附近的李舜臣水师精锐。
正中间的战船中,6名手持盾牌的士兵紧紧护着李舜臣,其他士兵则低身伏在甲板,等待号令。
尽管周围铁炮声不绝于耳,前侧的盾牌已满布弹孔,李舜臣始终泰山般站立在甲板上,仔细观察战局的变化,右手紧紧握着刀柄,一刻也未松懈。
“将军,掉头吧,敌船越来越近了”旁边的副将焦急万分,黄豆般大的汗水沿着脖颈而下,浸湿了铠甲里的罩衫。
“再等等,鹤翼阵刚刚摆好,必须让敌船全部入网”。
副将看着不远处敌舰甲板上的倭寇们已准备好绳索挂梯,只待一靠近便要登船,更是无法耐下心来继续等待,但转脸看到李将军如水般的面色和自信坚毅的眼神,到了嘴边的话又吞了下去。
敌船距离只有几十米了,再不变阵就来不及了。
副将的心已经跳到了嗓子眼上,正要再次劝说李舜臣时,只听到一声“变阵”,李舜臣声若洪钟,旗手和鼓手们接收到李将军的指示,开始向其他船只发放信号。
一字排开的朝鲜战船以最快的速度向同一侧调转船头,直至首尾相连。
此时,倭船已近在咫尺,倭寇们将带有钩子的绳索抛进了朝鲜战船中,争先恐后地架起梯子开始登船。
“开炮“,李舜臣的号令像是士兵们身体内的条件反射,刹那间朝鲜战舰百炮齐发。
炮手们娴熟地填弹、瞄准、点火,由于距离太近,一颗颗炮弹尽数击中包围圈内的倭国战船,一时间,樯橹灰飞烟灭,倭寇人仰马翻,落水者更不计其数。
不知不觉已近傍晚,海面又恢复了平静,只剩下破碎的倭国战船残躯在海面上游荡。
李舜臣仍然面色如水,若不是铠甲上的血渍和刀刃上的缺口,根本看不出他刚刚经历了一场鏖战。
朝鲜士兵忙着打扫战场,盘点伤亡和损耗。
李舜臣吩咐完手下的将士们,便转身望向闲山岛,如炬的眼神变得柔和起来。
不远处,几只海鸟一会儿在海面上滑翔,嬉戏玩耍,一会儿落在浅滩上悠闲的踱步,寻找食物。
若是没有战争,闲山岛的百姓们岂不也正在快乐地鱼猎和生活吗。
李舜臣的脸上露出了一丝笑容,仅仅一刹那,便又收回了笑容。
看着士兵们脸上洋溢着胜利的喜悦,李舜臣向副将发出指示”传命下去,抓紧修整,随时准备下一场战斗“。
随后,转身离开了甲板。
真的很好看。
评论里说电影不符合历史的基本都是史盲,电影中的海战背景,包括最后海战结果是符合历史,不信可以去查闲山岛大捷的历史,确实是朝鲜海军独自打的胜仗。
电影不强调壬辰倭乱的大背景,不强调明的作用,只写韩国自己,很多人酸了,非得让人家提明。
其实电影中也提及到了明,电影里不是讲了宣祖到平安道以北的义州,打算归附流亡于明吗?
还有一件值得注意的是明出兵是闲山岛海战半个月前的事儿(闲山岛海战1592年阴历7月7或8日,明出兵是6月中旬),闲山岛海战打的时候明军才刚要大举增援朝鲜,著名的战役,如平壤大捷、碧蹄馆大捷都是1593年的事儿,打闲山岛海战的1592年7月时明军数量和战果有限,其作用还不是那么显著。
情节和细节因为没有史料记载,无从得知,虚构的成分应该占大部。
整部电影,剧情上还不错,具有反转和细节处理,人物刻画很生动。
整体上李舜臣将军被描写成很稳的角色,就算在海战前,稳如泰山,追求正义之士,谋求自身民族利益。
但是在开战前还是很忐忑不安,不知道自己这样做是不是正确,毕竟要承担起很多责任。
对于日军将领胁坂安治的心理描写和人物刻画也很细腻,虽对战役和自己所做决定很有信心,但小心谨慎地步步逼近、以准确情报为依据,与其他大名将领有矛盾,但并非是个完全独断专行的愚者,一看就不是个省油的灯因此,双方在情报战方面的表现颇为突出,还算是扣人心弦。
双方都有所决定和准备后,最终的海战也很是精彩,一直呈现反转,有几处看似朝鲜水军面临困境,但反转一个接着一个(可能史实并非如此),还是给海战增添了许多激情,让人肾上腺素澎湃。
听说花了不少预算,看来相当一部分花在了游戏美工上吗?
类似无人机航拍海上百艘旗舰大战的时候,还蛮壮观的,挺有感觉。
大致做到有点有面。
不过应该历史的考证不多,所以细节就无法太细。
不知道编剧尽力了没有,给男主将们的发挥空间挺小的感觉,常常就是凝重脸,沉静脸,坚毅脸,紧张脸,看起来没啥变化。
当然作为一个剧,还是有不少小段很像舞台剧。
比如那个女侍,咬掉牙毒以后流血昏迷几天,又可以送信又可以那啥了。
期待有史学大牛,借此来科普一番。
百艘战船,在500多年前,总司令怎么给各船长下命令,船长又怎么给每艘船的不同分工下不同的命令,这一个发,那边一个收,都挺有讲究吧。
太炒冷饭了,只是这次将军几乎变成哑巴了,台词几乎没有,动作只会站着,对手也变得极傻。
韩国拍的抗日爽剧,在电影院看起来尤其爽啊!此外感受: 海战好特别;李舜臣全程面瘫,被打造成朝鲜诸葛亮。台译《韩山岛海战》。
画面制作比较精良,过程好无聊吧,动作戏太少了,铺垫太多了吧,以为多牛批,就这。
挺好看的啊小人物的信念精神挺好的,战斗场面也很赞啊。不过,一场小海战就阻止日本狗侵犯我大明?棒子真是!
嗯 原来是朝鲜阻止了日本入侵中国,棒子真敢拍
不太行
3星半,平心而论,豆瓣的评分有点低了,抛开棒子自我意淫的劣根性不谈,大场面的制作水准还是值得一赞(不得不感叹韩国电影工业的迅猛发展),双方角力的气势彼此交错,高潮迭起。另外,朴海日版的李舜臣形象还是逊于崔岷植,气场上也被卞约汉抢了风头。
看了下地图 相当于在釜山外海一些小岛的战争 前段节奏很慢 战场上还行
场面4星 2倍速
😋
就渲染日本投降俘虏的这个大局观,减一星!😄
第一部我是为了看崔岷植,第二部没有崔岷植我还有什么看头?过于拖沓时长太久观感不佳
論抗日,棒子們從來沒輸過咱天朝。
服化道非常精炼当时故事非常差的商业电影,其中尤其是角色=塑造十分灾难,可能是韩国人对于自己的民族英雄畏手畏脚,以至于将朴海日作为脸模使用来塑造角色,真就拍出了些许韩版《战狼》的气质。若是站在反叛胁坂的角度,你会发现节奏还不错。
韩国抗日主旋律大片。复原了闲山岛海战的全过程,龟船的还原度很高。李舜臣在韩被奉为民族英雄,印象中首尔市区还有其雕像。朴海日演的李舜臣太收敛了,沉稳冷静有余,而热情不足,不太符合我对民族英雄形象的想象。情节上两大亮点:一是围绕着高潮(海战)进行的缜密布局(双方间谍、计谋),二是(尤其是通过加藤这一角色)在爱国主义、民族主义的精神谱系基础上,将战争升华到了“义”的层面,脱离了简单的国家利益对立,转为具有一定普适性的共同价值。英文字幕对“义”的诠释局限在了战争的正义性上,实际影片表现出的是正义、伦理、(不分民族、阶级的)情义等多重内涵。另:机翻字幕看着太难受了,把Joseon翻译成约翰逊也是绝了。还好有官英字幕。
还不如第一部
总结:胁坂安治想模仿武田信玄(三方原之战),却一不小心模仿了武田胜赖(长篠之战)……电影肯定有夸大和艺术加工的地方,比如胁坂安治能夺了加藤嘉明和藤堂高虎的船就离谱。其次就是韩国人给自己脸上贴金太多,如果不懂历史的,会以为真是朝鲜保护了大明(乌鸡鲅鱼)。日本战国爱好者可以看看,图一乐。
原来朝鲜凭一己之力阻止了丰成秀吉住到宁波的妄想。
6.7/10 虽然制作精良的海战场面, 令这部商业作品拥有了一些可观之处。 但本片的诸多失误, 让这场海战成为一把解放叙事枷锁的钥匙, 而非推动作品登上更高一层台阶的助推剂。 漫长的堆积过程中, 演员蹩脚的发音, 角色单薄的形象, 情节空洞的内核...诸多失误让这一过程沦为了诸多参战人员登台亮相的秀场, 丝毫未有战争时期一触即发的紧张感和精彩的头脑风暴。 更为可惜之处, 在于如此漫长的堆积, 只换来一场双线叙事下不够精彩的海战。 对主人公的神化以及大量特写, 更令这场制作精良的海战, 观赏性未达应有的水准。 作为影史票房冠军作品的制作人, 竟犯下因人物和故事实存而忽略剧本完成度的失误, 难以置信。
2018韩国海战片《鸣梁海战》的前传,讲述年轻时代李舜臣对抗日寇的故事。只是时间线在《鸣梁海战》之前,故事内容和《鸣梁海战》没有关联。没看过《鸣梁海战》也没有影响,可以作为独立电影观看